2011년 9월 13일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추억

코비 "전쟁 포로"

태평양 전쟁 동안 효고 현에는 고베의 3개를 포함하여 총 9개의 연합군 포로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날을 전후하여 SNS에 7회 연재되었던 본 기획에 등장하는 전 포로와 친족, 관계자들은 오오카 쇼헤이의 소설 『풍룡기』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열악한 식량, 공장 및 항만 운영에서의 고된 노동, 헌병에 의한 학대 및 고문 추위와 영양실조로 동료들이 잇달아 죽어가는 가운데 포로들은 무감각하고 끈질기게 버텼다 1945년 8월 15일 밤의 점호는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의" "하나, 둘, 셋" 2008년 세상을 떠난 호주군 출신 존 레인(John Lane)은 전쟁의 종식을 깨달은 순간을 기록했고, 4년 전 고베에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여러분 앞에 서서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히메지 캠프에서 통역으로 일했던 한국인 직원의 일기에는 크리스마스 밤에 제공되는 로스트 비프와 커피 메뉴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이 끝나기 1년 전, 한국인들이 굶주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부족한 의약품으로 수감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약 22,000명의 호주군이 한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고, 3명 중 1명이 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증오의 기억은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해롤드 램지(90)씨는 귀국 직후 동한국 대지진으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사회부 기자 오츠키 미카는 고향 고베 출신으로 20대 후반입니다 “2년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향에 포로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고,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모리타마 야스히로 차장과 수차례 논의 끝에 구도를 다듬고 글씨체도 절제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다음 세대를 위하여'는 포로였던 아버지의 경험에 관한 책을 출판한 미국인의 말로 끝납니다 "미국 젊은이들이 미국이 한 일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국 젊은이들도 한국이 전쟁 중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진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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